남성에 늦게 내린 눈
심청이와 구연지는 오랜 죽마고우로, 약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벌써 4년이 흘렀다. 구연지는 해마다 기막힌 사고나 핑계를 대며 결혼식을 미뤄왔고, 온 도시는 그가 그녀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해서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 칭송했다. 어느 날, 그녀가 결혼식 청첩장을 들고 그의 서재 밖에 서 있다가, 올해는 또 어떤 핑계로 결혼식을 미룰지 비서와 밀모하는 구연지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. 지난 4년 동안 그녀가 겪었던 모든 눈바람과 상처는, 그저 제 비서가 마음 아파할까 봐 구연지 혼자 자해공갈로 연출한 추악한 연극이었다. 마음이 완전히 죽어버린 심청이는 미련 없이 홍콩으로 떠나 거물 곽운심과의 정략결혼을 선택한다.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구연지가 홍콩까지 피눈물을 흘리며 쫓아오지만,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지 못한다. 결혼식 당일, 구연지는 교회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만,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다른 남자의 손에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모습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. 심청이가 돌아선 곳에는 찬란한 여생이 기다리고 있었고, 구연지는 지독한 후회 속에서 뼛가루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불타 없어질 운명이었다.








